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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투라이프

[자투리경제 2Life 정보] 生前契約…"당신의 사후 우리가 책임집니다"

 

'당신다운 죽음을 서포트합니다'

 

이 무슨 소리인가? 혹시 자살을 도와주겠다는?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이다. 웰다잉(Well Dying)을 지원하겠다는 거다. 앞의 문구는 일본의 한 생전계약 서비스업체가 상품 홍보를 위해 내건 홍보 카피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생전 계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생전계약(生前契約)이란 자신의 사후에 필요한 수속, 절차 등을 살아있을 때 미리 계약해 두는 것을 말한다. 무연고(無緣孤) 독거노인이 장례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장례식을 예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생전계약은 1인 또는 노부부 세대의 증가, 심화하는 고령화 등 가족과 인구 변화가 낳은 새로운 풍경이다. 지난 80년만 해도 일본은 할머니 할아버지, 자녀, 손자가 함께 사는 대가족 세대가 절반(50.1%)이 넘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2014년 기준)은 13.2%까지 크게 줄었다.

눈에 띠는 것은 요즘 일본의 생전계약이 ‘진화(進化)’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생전 계약자들의 연령대는 주로 70~80대로, ‘인생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세대였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50~60대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부부가 함께 장례회사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자신의 죽음을 자녀에게 의탁하기 보다 스스로 준비하는 사회 분위기 확산과(일본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임종을 위한 활동이라는 뜻에서 ‘종활·終活’이라고 부른다), 이들 세대가 재정적 여유를 갖고 있다는 점이 한 몫을 한다.

 

생전 계약자의 연령대만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장례는 물론이고 신원보증이나 재산관리에서부터 안부확인이나 간병과 같은 일상생활 서포트까지 대행 범위에 한계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반려견 케어, 성묘 대행까지 서비스 내용에 포함하기도 한다니, 사실상 가족 역할을 대행해 주는 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원보증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의 노인시설이나 병원들이 고령자의 입주나 입원때 신원보증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NPO법인(사회적 기업에 해당) ‘기즈나 회(동반자 모임)’는 2001년에 설립해 현재 전국에 14개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고, 신원보증, 생활지원, 긴급상황 대

처, 장례 납골까지 서비스 내용이 폭넓다. 계약내용을 분야별로 보면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살아있을 때 안부확인, 시설입소나 병원 입원시 신원보증, 재산관리 대행 등의 △생전 사무위임계약과 치매 등 판단능력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후견인을 정해두는 △임의 후견계약, 그리고 장례, 납골, 유품정리 등 △사후 사무위임계약이다.

 

생전계약 사업자들은 주로 NPO법인이나 재단법인 등이고, 최근 수요가 늘면서 사업자도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계약 형태는 계약자가 낸 돈의 대부분을 예탁금으로 예치해 놓고 계약이행 상황이 발생하면 예탁금에서 인출해 쓰는 방식이다. 계약은 계약자와 생전계약회사, 법무법인의 3자계약이고, 예탁금은 법무법인에서 관리한다.

 

생전계약의 비용은 얼마나 될까. 대표적인 생전계약사 ‘리스 시스템’의 서비스 비용은 장례 서비스 등 기본료가 50만 엔(약 550만원)이고 신원보증 등 생전사무위임 비용은 별도다. 다 해서 대략 100만엔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NPO법인 ‘기즈나 회’는 신원보증을 비롯한 생활지원, 장례 업무를 포함한 기본요금이 190만 엔 정도. 일시금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매월 분할 납부도 가능하다고 한다.

예탁금 방식이다 보니 유용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2016년 3월 공익재단법인 일본라이프협회가 생전계약 예탁금을 유용해 회사가 파산하고, 계약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지자체가 나서서 생전계약을 독려 지원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수중에 15만 엔 밖에 없습니다. 화장해서 무연묘를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를 거둬줄 사람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2015년 초 요코스카(横須賀) 시에서는 고독사 한 노인이 남긴 쓸쓸한 ‘생전 편지’가 공개되면서 무연 고독사 문제로 지역 전체가 술렁였다. 이후 지자체가 독거노인들의 장례지원에 나서야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요코스카(横須賀) 시는 그해 7월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령자를 대상으로 사후 절차를 지원하는 ‘엔딩플랜 서포트사업’을 시작했다.

 

시청에 담당창구를 두고 고령자의 희망에 따라 장례업체와 생전계약을 체결하도록 중개, 지원해주고 있다. 시에서 납골까지 지켜봐준다. 비용은 보통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장례비용을 기준으로 해 20만 6000엔(2016년 기준) 정도. 시는 장례업체에 일부 예산을 지원해 계약비용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시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갈수록 늘어나는 ‘무연 유골’ 문제의 부담을 생전 계약 지원 사업으로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요즘도 요코스카 시에는 엔딩 서포트 사업을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지자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글: 김웅철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同대학 대학원 사회학 석사.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 국제부장 등 역임. 현재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 ‘노인대국 일본’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과 책을 쓰면서, 인류가 직면할 초고령사회의 모습과 해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아직도 상사인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보는 아내》등 다수의 일본 서적을 번역했으며, 저서에는 《일본어 회화 무작정 따라하기》가 있다.

 

[자투리경제=윤영선 SNS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