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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투라이프

[자투리경제 2Life 정보] " '마음 완전히 비웠다'고요. 이 말은 완전 거짓말입니다"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 욕심을 다 내려놓았어.”

 

저는 이런 말 믿지 않습니다. 20년 가까이 정신과 의사 하면서 “내려놓았다, 마음 비웠다”라는 말, 정말 자주 들었습니다. 특히 50대, 6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어르신들...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기도 합니다. 무례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런 말 하시는 분치고 실제로 내려놓은 사람 한 명도 못 봤습니다.

“내려놓았다, 마음 비웠다”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이거 굉장히 어렵습니다. 중년 남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사는 데 지장이 없어도, 인간의 욕심은 완전히 비워낼 수 없습니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그나마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인정에 대한 욕구는 절대 줄일 수 없습니다.

 

조직, 사회, 친구, 가족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열망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커집니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여전히 나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야!”라는 걸 확인 받고 싶은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거죠.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가족과 동료와 부하가 존경의 눈빛을 보내면서 “당신이 최고예요. 당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거예요”라는 말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중년 남성에게는 “세상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만큼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없습니다. 쓸모없어졌다는 생각

이 중년 남자를 우울하게 만들고, 불행에 빠뜨리죠.

 

충분히 내려놓지 못 했으면서 “이제 다 내려놨다”고 하는 건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건드리지 마라”고 방어벽을 쌓아올리려는 심리입니다. “나는 잘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이 문제다”라며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 했는데 그렇게 믿어 버리면 “나는 다 내려 놨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가 있느냐”라며 복수의 칼을 품게 됩니다. 원망과 분노만 더 키우게 됩니다.

 

불안이나 우울, 외로움과 두려움처럼 부정적 감정을 무시하고 억누르려는 중년 남자일수록 “내려놓았다”는 말의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스스로 그런 나약한 감정 따위는 느끼지 못 하는 강한 남자라고 강하게 믿으니까 이런 감정들을 억압해 버립니다. 그러다 나이도 들어가고 마음에 상처도 쌓이고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죽음을 생각하면 슬금슬금 불안이 올라오는데도 그걸 솔직히 받아들이지 못 하는 거죠. 아니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나는 마음 다 비웠어”라고 하며 자기 감정으로부터 도망칩니다. “내려놓았다”는 건 심리적 회피 반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내려놓은 사람은 “내려놓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습니다. 내려놓았다는 마음마저 내려놓았으니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사람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요?) 그러니 “내려놓았다”라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고, 감정을 숨기며, 도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솔직해지세요. 가족이 나에게 “당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예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자기 마음을 드러내세요. “그래도 내가 있었으니까, 이 회사와 우리 가족이 지금껏 잘 살 수 있었지 않느냐”하고 당당하게 표현하세요.

 

괜히 “내려놓다”고 말하며 이만하면 됐다, 라고 자신을 속이지 마시고요. “나는 여전히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다”라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욕심 비웠다”라는 말로 회피하지 말고, 아직 나는 건강하고, 능력 있고, 최선을 다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 세상에 활짝 내보이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전문의>

 

[자투리경제=박영석 SNS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