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경제] 어떤 ‘일탈’은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나와 내 삶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어라

 

 

꾹꾹 눌러놓았던 꿈과 희망을 더 이상 억눌러 놓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두 팔로, 물속으로 공을 꾹꾹 쑤셔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두 팔에 힘이 빠지면, 물 속에 있던 공이 물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지요. 아마 우리가 일탈이라고 부르는 행동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찬 공이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과 똑 같은 것일 겁니다.

 

일탈이라고 하면, 왠지 나쁜 뉘앙스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탈이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일탈이라고 다 같은 거라고 보면 안 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거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할 때 이것이 과연 어떤 일탈에 해당하는가, 하고 따져 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제가 상담하면서 겪은 바에 따르면, 일탈에는 대체로 네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회피로서의 일탈

 

이런 것은 회피라고 부르는 심리-행동 기제입니다.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맞부딛혀서 견뎌내야 하고, 버텨내야 하는 것에서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에 지배당하는 것이지요. 회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심리 반응이기도 합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그래 당장 이겨내야지' 라기 보다, ',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 보편적인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회피하고 나면 그 이후에 현실의 무게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회피하면 당장은 편해도, 나중에 감당해야 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고요. 만약, 현실에서의 일탈이 회피를 위한 목적이라면, 뒷끝이 그리 좋을리 없을 겁니다.

 

 

2. 자극으로서의 일탈

 

반복된 일상이 계속되면 뇌에서 도파민이 점점 더 적게 나옵니다. 도파민이 사라지면 짜릿함도, 열정도, 활력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뭔가 새로운 자극을 통해서 도파민을 분출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쇼핑을 하거나, 남편을 두고 애인을 사겨 보거나,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요. 이런 자극들은 도파민을 강하게 분출시킵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나마 쾌감을 느끼고, 활력도 샘솟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자극을 통해 도파민을 분출시켜서 얻게되는 활력은 오래 지속되지 못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한 자극이 있어야, 짜릿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극이 없어지면, 더 깊은 무료와 무감각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3. 균형을 찾기 위한 일탈

 

기시미 이치로의 책 미움받을 용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래된 차가 편하니까, 계속 타고 다는 것과 같다. 새로운 생활 양식을 선택하면 새로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눈앞의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라.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한 삶을 사게 되지.... 인간은 이러저런 불만이 있더라도 지금의 나로 사는 편하고 안심이 되는 것이지. 변함으로써 불안을 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이런 상황에서 일탈은 꼭 필요합니다. 일탈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삶의 균형을 깨뜨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탈이 진정으로 필요할 때, 스스로 용기를 꺾어 버리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원칙을 스스로 차마 깰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어찌보면, 익숙한 것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익숙한 것에서 과감한 일탈을 실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정기적으로 상담을 해 왔던 40대 초반의 직장 여성이 얼마전 상담에서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어요"라고 하더군요.

 

테헤란로에 위치한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에서 경력을 쌓으며 승승장구 해 오던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수술로 암을 제거하고, 힘든 항암 치료도 잘 견뎌냈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휴직을 했다가,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는 다니던 회사에 복직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완전히 사직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회사 다닐 때는 수시로 야근하고, 야근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저녁을 먹어 본 적이 없었어요. 휴일도 없이 일했어요. 그런 삶이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제는 나도 내 삶을 찾아서 살고 싶어요." 그녀는 이전의 자기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조그만 술집을 하나 차리고 싶어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허물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요. 기분에 취해 술 한 잔 주고 받으면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4. 자기 복잡성을 키우기 위한 일탈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개념이 다양할수록, 그것도 한 사람의 내면에 서로 모순되는 자기 개념이 한꺼번에 자리 잡고 있을수록 심리적으로는 더 건강해집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일처리 꼼꼼하고 완벽한 직장인지만, 퇴근 후에는 어수룩한 표정으로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이를 가르칠 때는 호랑이 같은 엄마가 되기도 하고, 금요일 밤에는 화끈하게 놀 줄 아는 여자가,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자보다 심리적으로는 더 건강합니다.

 

언뜻 보면 '어떻게 저렇게 이중적일 수 있지?'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과 맥락에 맞춰서 자기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그만큼 유연하다는 증거이니까요.

몽테뉴도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기 개념들 간에 상호 모순되는 정도를 자기 복잡성 Self Complexity이라고 합니다. 자기 복잡성이 크면 클수록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강하고 우울증이 걸릴 가능성도 낮습니다.

 

상황에 따라 빨간 립스틱이 필요할 때도 있고, 때로는 맨 얼굴에 청바지를 입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미니스커트에 검정 스타킹이 필요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 입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듯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도 떄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단정하게 이리 저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걸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마음이 튼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니까요.

자기 복잡성은 일탈을 많이 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또 모레 같은 삶을 살면 자기 복잡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좋은 엄마, 항상 좋은 아내, 항상 사람 좋은 동료 직원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자기 마음의 색깔은 단조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삶에서 활력도 사라집니다. 단순한 삶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삶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십시오.

 

일 때문에 바빠도 짬을 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평소 듣지 않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도시 속 골목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해야 합니다.

 

익숙한 내 모습이 아니라, 또 다른 내 모습이 하나 둘 씩 더 자라날 수 있도록 새로운 자극에 나를 자꾸 노출시켜야 합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자극을 받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도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질 수 있으니까요. 나라는 사람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한 일탈은, 하면 할수록 마음 건강에는 더 좋습니다.

 

지금의 일탈이 인생의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일탈에는 불안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살던 대로,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불안을 느끼지도 않겠지만, 살아가는 맛 또한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상상하면 두려운 느낌이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런 것을 저는 감미로운 긴장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일탈이 삶에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고, 나라는 사람이 더 다채로운 색깔을 띄게 하려고 시도할 때 반드시 따로오는 것입니다. 감미로운 긴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감당하지 못 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결혼하고 주부로만 살다가, 이제 내 일을 해 볼까 하는데 남편이 싫어해요. 그러면 괜히 남편하고 사이만 멀어지니, 그냥 이대로 살래요" 하고 자신을 주저앉히는 경우도 자주 봤습니다.

 

일상에서의 일탈을 자신이 뭔가 잘못 하고 있는 것인양 잘못 받아들이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묶고 있는 현실의 사슬을 쉽게 내던지지 못 합니다.

회피하고, 자극만을 쫓기 위한 일탈은 죄책감을 일으킵니다. 이건 내가 그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마음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겁니다. 감미로운 긴장감과 죄책감은 구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 봐야 합니다. "앞으로 5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하고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일탈이 5년 후 내가 그리는 그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면, 감미로운 긴장이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때는 죄책감이 쫓아오게 마련입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도 있지만, 마땅히 내 모습이어야 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 할 때 느끼는 죄책감도 있습니다. 이것을 이런 죄책감을 내재적 죄책감 (intrinsic guilty)라고 합니다. 죄책감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일탈이 없다면, 오늘은 내일과 같을 것이고, 미래를 살지 않고도 자신의 미래가 뻔히 보이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삶에서는 윤기가 사라지고 맙니다. 어차피 결론이 나 있는 인생, 더 살아야 뭐 하나, 하는 허무함이 찾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현실이 어떻든, 우리는 매 순간 일탈을 꿈꾸어야 합니다. 일탈이 꿈꾸고, 그것을 향해 몸을 던질 수 없다면 제대로 산다고 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요.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전문의>

 

 

 

[자투리경제=윤영선 SNS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