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경제] 당신이 먹고 있는 약, 독(毒)인지도 모른다

 


가끔 이런 물음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말이 없었다면 인류문명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까? 감히 누가 말의 위력을 부인할 수 있으랴. 하지만 언제나 최선은 최악과 맞물려 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와 마주앉아 “약은 독이다”라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토론중이다. 신문기사 제목들 때문이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매일 12가지 약을 먹는 72세 주부도 있다. 우리나라는 10명 중 8명이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먹고 있어 일본의 2.3배, 영국의 6배다. 약을 많이 먹을수록 치매위험이 높다니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뭔데 우리를 싸잡아 비난이냐?”며 던질 돌팔매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때 <위험한 제약회사>의 저자 피터 괴체를 만났다. 그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며 빨리 말하라 등을 떠민다.
 

#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만든 두 가지 유행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바로 담배와 처방약이다. 약은, 심장질환과 암에 이어 주요 사망원인 3위다.”


오백쪽짜리 책을 읽는 내내 “약은 독이다”라는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 말은 16세기 스위스 의화학자(醫化學者) 필리푸스 파라셀수스가 한 말인데 머리와 꼬리가 잘린 채 수백 년 동안 인용되어왔다. 그가 한 말은 이랬다. 
 

세계인의 약이라 불리는 아스피린도 식물의 독을 가공한 것이다. 왜 우리는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한 약에 이토록 의존할까? 윌리엄 오슬러의 말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약을 먹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짧은 시간에 수명을 100세 시대로 올려놓는데 기여한 의료계와 제약계의 노고는 치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약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부추기고 있다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세 가지 문제, 항정신병치료제와 비만치료제 그리고 과다복용에 대해서는 모른 체할 수가 없다. 우리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 그렇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하길 “인간은 몸 안에 100명의 명의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는 “의사의 역할은 이 명의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환자를 돕는 일”이라고도 했다. 의사와 제약회사와 환자 중 누가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묵살해 약을 사망원인 3위에 올려놓은 것일까? 셋의 합작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몸 안 100명의 명의를 다른 말로 표현한 의학용어가 있다. 병이 저절로 없어진다는 뜻의 ‘자연완화’다. 자연완화의 치유력을 믿지 않고 엉뚱한 약을 복용하다 고생한 선배 이야기다. 여고동문회장인 선배가 임원회의에 나오지 못해 병문안을 갔더니 몸을 가누지 못한다. “친구 권유로 정신과를 다녀오신 후 저러신다”며 딸이 원망의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독감으로 기력을 잃은 지 한 달여. 몸이 말을 듣지 않자 짜증이 나고 한탄스럽다. 얼핏 보면 우울증이다. 하지만 선배는 활동적인 분이라 우울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배를 설득해 약봉지를 들고 내과전문의를 찾아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당장 약을 끊으란다. 약을 끊고 보양식으로 기력을 회복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환자는 의사에게 매달린다. 하지만 오진이 15%에 이른다고 한다. 정신과진단의 오진은 이보다 훨씬 높다. 피터 괴체의 말에 따르면 정신과진단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그렇다. 우울증환자에게 최선의 약은 보살핌이다. 이를 묵살하는 의료진이 못마땅한 괴체가 가만있을 리 없다. 제약사까지 싸잡아 공격이다.
 
비만을 고민하는 여성도 제약회사의 봉이다. 비만치료제 복용으로 죽음에 이른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은 아마도 1960년대 유럽에서 수백 명이 사망한 후에야 회수된 아미녹사펜 사건일 것이다. 이후에도 패션모델처럼 날씬하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많아 제약회사들이 비슷한 약을 쏟아내고 있다. 비만치료제 피해는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후배 딸은 미인대회에 출전해 인기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완벽하게 갖춰진 신혼집에서 깨가 쏟아질 무렵인데 먹었다하면 토한다. 부모들은 임신이라 기뻐했는데, 결혼 전에 복용한 식욕억제제로 인한 거식증(拒食症)이다. 시집에는 자연유산이라 둘러대고 치료에 매달렸지만 허사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친정엄마가 이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이처럼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비만치료제는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왜인가? 이 물음에 대한 괴체의 답이다.
 
"제약회사가 약을 파는 게 아니라 약에 대한 ‘거짓말’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의료쇼핑꾼’이라 부른다. 제주도가 밝힌 의료쇼핑 사례다. 병의원을 바꿔가며 1년에 630회 6000일 분의 약을 처방받은 이가 있는가 하면, 의료기관 열세 군데에서 574회 진료, 1863일분 약을 타낸 이도 있었다. 이분들 연령이 궁금하다. 65세 이상 노인 700만이 5천만 인구의 의료비 반을 쓰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7년여 높다. 여자가 남자보다 병원엘 자주 가는 것을 원인 중 하나로 꼽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년간 우리나라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회원국 평균 6.7회의 두 배인 14.6회로 6년째 1위다. 여자들이 일조한 것인가?
 
차도가 없는데도 매일,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번갈아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는 할머니가 있다. 딱히 아픈 데도 없는 90대 시아버지가 종합검진을 받아야한다며 집을 나선다. 영양제를 복용중인 친정엄마가 비슷한 영양제 이름이 적힌 쪽지를 내밀며 보챈다. 이래서일까? 가짜건강식품 피해가 2013년 320건에서 2015년 512건으로 늘었다. “이곳이 푹푹 쑤시지요?”라며 서러운 마음을 긁어주니 할머니들이 탄복이다. 이때다 하고 3만5000원 짜리 건강식품을 49만원에 안겨 1억이 넘는 이득을 챙긴 사기꾼도 있었다.
 
지금까지 지자체들은 노인들의 놀이터 확대에만 치중해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약 오남용을 막기 위한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하면 노인건강을 해치는 일은 물론이고 의료비 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국가적인 손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주관적 건강상태’를 조사한 내용이다. 15세 이상 한국인 중 자신은 건강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회원국 평균 69.2%의 절반인 35.1%로 최하위다. 사소한 통증에도 두려움에 떠는 심기증(心氣症)환자가 얼마나 많기에 건강불량국가 순위 1위에 올랐을까?
 
건강염려증이라 불리는 심기증이 극에 달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니 심각한 병이다. 심기증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그럼, 우리 몸에서는 매순간 수백만 개 세포가 죽고 수백만 개의 새 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믿어보라. 병원을 들락거리는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 뒤로 걷다 넘어져 대퇴골 수술을 받은 할머니. 피를 맑게 한다며 물구나무서기를 하다 쓰러져 입원한 할아버지. ‘다람쥐친구’ 흉내를 내다 가파른 산길에서 떨어진 중년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는 이런 스산한 이야기가 널려 있다. 운동이 최고의 보약인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나친 근력운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고 한다. 면역세포가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며 근육이 녹기도 한다는 것.
 
# 어찌 운동만이겠는가? 아무리 좋은 약도 과다복용은 독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좋으니 너에게도 좋지 않겠어?” 그런 약은 없다. 만인의 모습이 만 가지이듯 사람의 생체인식도 만 가지라 그렇다. "정서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서는 질병이 살아남지 못한다.”
 
밥 프록터가 <생각의 시크릿>에서 한 말이다. 여성 환자 7만여 명의 자료를 함께 분석한 하버드대행동과학연구소와 보스턴보건대학연구팀도 “낙관적인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사망률이 30% 낮았다”고 했다. 긍정적인 생각이 좋은 약이라는 이야기다. 약국이 즐비한 골목을 누비다 이제야 답을 찾았다.
 

약은 죄가 없다. 지나치게 약에 의존하는 우리 잘못이니 약에게 독의 누명을 씌우지는 말자. 당신이 지금 양손에 다른 이름의 약을 들고 있다면 독과 약의 경계선에 서 있는 지도 모른다.
 
<글: 이정옥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