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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투라이프

[자투리경제] 주택연금에 숨어있는 상속경제학

 

주택연금은 제도가 좋은 데도 가입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길게 보면 가입자가 꾸준하게 증가하는 등 다른 나라들보다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주택가격 변동, 연금 액수, 자기 집에 대한 애착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자녀가 관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가입에 반대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주택연금에 가입했다가 며칠 후에 자녀분과 같이 와서 해약하고 가기도 합니다. 주택은 물려준다는 생각 때문에 상속 받을 자녀가 이해관계자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녀들의 압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집을 가진 부모들의 상속에 대한 전략적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번하임(Bernheim)과 미국 재무장관을 지냈던 서머스(L. Summers)는 경제학자답게 상속 가능한 재산을 두고 부모와 자식이 전략적으로 행동한다고 보았습니다. 부모는 상속할 재산을 가지고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를 얻으려고 합니다. 미래의 상속재산과 자녀의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이죠. 자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효(孝)가 될 수 있고, 집에 손자를 데리고 자주 방문하거나 부모가 어렵거나 아플 때 돌봐주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상속 가능한 재산이 많을수록 자녀와의 접촉이 많아집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조만간 상속이 예상되고 자녀에게 곧 구체적인 액수가 할당될 시점에서는 더 많은 접촉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참고로 상속에는 자녀와 게임을 하듯 삭막한 전략적 동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순수하게 이타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속자가 즐거워하는 게 좋아서 물려주기도 합니다. 이는 자신과 상속자가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더 강해집니다.

미국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같이 쓰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던 조지 부시 부자(父子)는 아버지와 아들 이름이 조지(George)로 같습니다. 다른 이론은, 쓰다가 남아서 물려준다는 것입니다. 노년에 지출될 금액이나 자신의 수명을 모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자산을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다가 사망하면서 남은 자산이 상속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동기가 지배적일까요? 일단, 시부모와 혈연적 관계가 없는 며느리가 경제권을 쥐고 있는 걸 감안해야 할 듯합니다. 실제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시부모를 둔 며느리는 여자들끼리 얘기를 하다가 시부모에게 연락이 오면 만사 제쳐 놓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달려가버린다고 합니다. 시부모가 맘에 안 들면 손자도 안 데려가고 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며느리의 발언권이 강해지니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략적 상속 동기가 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담 삼아 사람들에게 집에 금고 하나 사서 거기에 도금한 금궤들 쌓아 두고 자식 부부 오면 슬쩍 닦는 척하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페이크(fake)는 신(神)도 귀엽게 봐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속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전략적 게임 때문에 연금과 상속에서 다음과 같은 행동들이 나타납니다.

첫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주는 종신연금이 좋은 데도 생각보다는 종신연금을 충분히 구입하지 않습니다. 종신연금은 자신의 목돈을 종신연금과 교환하는 행위인데, 연금은 중도해지가 되지 않고 사망하면 지급이 중단되므로 상속 가능한 재산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에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게 되므로 종신연금보다는 목돈을 금고에 가지고 있으려 합니다.
 
둘째, 증여를 통해 재산을 자식에게 미리 주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됩니다. 증여를 해버리면 상속 가능한 재산이 없어져버리니 자녀를 움직일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완책으로 최근에는 증여를 하면서 효도계약서를 쓰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집 방문 횟수나 병원 입원할 때의 비용 부담 등을 쓴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재산과 효도계약서 중 어느 효력이 큰 지는 삼척동자도 압니다. 오죽했으면 2016년에 ‘불효자 방지법’이 발의되었겠습니까?

주택연금 가입동기도 전략적으로 설명됩니다. 주택을 연금으로 전환해버리면 주택이라는 상속가능 재산이 없어져 버립니다. 가입을 주저하는 고령자들은 부지불식간에 연금을 받는 것보다 자녀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거나 자녀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 연금을 선택하는 분들은 자녀의 서비스에 대한 기대보다 현재의 현금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 연금소득으로 효에 갈음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구입합니다. 레저를 즐기거나 좋은 병원을 이용하는 행위 등입니다.

'주택연금이냐 효도냐'. 이 둘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우선 주택의 명의를 미리 자녀에게 이전하고 자녀의 서비스를 기다리는 것은 안 됩니다. 부모는 자식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특히 엄마는 더 그러합니다. 하지만 부모도 자식을 다 모르는데, 거기에 며느리라는 변수까지 가세됩니다. 요즘 사전 증여 관련해서 소송도 증가하고 효도계약서를 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걸로 봐서, 이 길은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많다는 걸 뜻합니다.
그냥 주택을 보유하고 주택연금도 들지 않는 것은 노후를 옹색하게 만듭니다. 3억 원 집을 70세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월 91만 원을 받는 데 이만큼을 포기하는 셈입니다. 굴비 매달아 두고 밥 먹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확실한 연금을 택하는 길은 불확실성이 작습니다. 주택연금은 국가가 지급하므로 안전성도 있습니다. 노후에는 불확실성이 작은 길을 택하는 게 정도일 듯합니다. 게다가 부모가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면 자녀도 좋아하므로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상속 가능한 주택자산으로 자녀에게 서비스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이를 연금화해서 그 돈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사는 것이 본인에게나 자녀에게나 모두 좋습니다. 본인의 주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존중을 해줍니다. 전략을 써봐야 머리만 아픕니다. 세상일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냥 상식을 택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숲 속에 있는 참새보다 손 안에 있는 한 마리 참새가 낫다고. 노후에 들어맞는 말입니다.

<글 :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