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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투자 포인트

[자투리경제] 나이는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매우 빠른 속도로  한국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다. 하지만 은퇴자의 소득은  안정적인 노년기를 보낼 만큼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은퇴자에게 ‘투자’가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다. 인지적 능력이 쇠퇴하긴 하지만,  노년은 오랜 경험과 신중한 태도로 인해 원숙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과연 노년기의 투자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2011년 마이애미 대 조지 코니오티스 등은 “나이많은 투자자가 더 나은 투자 결정을 내리는가?”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모두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지만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 노화가 투자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일반적으로 은퇴자는 청장년층에  비해 재산이 많다. 투자 포트폴리오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수입은 47~52세의 장년층이 가장 높았지만,  재산은 60세 이후 연령층이 가장 많았다. 당연히, 포트폴리오 규모도 노년이 청장년층의 두 배에 달했다.

은퇴자에게 투자 수익은 아주 중요하다. 은퇴 후에는 일정한 급여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고령의 투자자들이 더 나은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경험 많은 투자자일수록 더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짜고, 위험을 분산하며, 거래 횟수를 줄이기 때문이다. 투자 원칙을 더 잘 준수하면서 손실을 최소화했다. 즉, 나이가 들며 경험이 쌓이고 투자 지식도 축적된다는 것이다. ‘현명한 은발의 투자자’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투자 대상을 분산하고, 거래 횟수를 줄이는 것은 투자의 기본 원칙이다.  나이 많은 투자자, 경험 많은 투자자들은 이  원칙에 충실했다. 모험적인 투자는 꺼리고, 잦은 사고팔기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분산 투자 원칙도 비교적 잘 지켰다. 미국의 결과라 한국과는 사정이 좀 다르지만, 수수료가 낮은 뮤추얼 펀드 비중이 젊은 층에 비해 높았고, 다양한 자산 등급에 분산 투자하는 경향을 보였다. 외화 자산에도 더 많이 투자했다.

고령의 투자자는 일반적으로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되는 마진 트레이딩과 선물, 옵션거래의 비중도 낮았다. 다만 경험이 많은 고령 투자자의 경우는 오히려 선물이나 옵션거래를 많이 했다. 이러한 결과만 보면 노화는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투자 성공을 부르는 긍정적 요소로만 보인다. 사실일까?  

# 인지 노화 가설과 투자 실패

인지 노화 가설에 의하면 인간의 인지 능력은 70세 무렵에 급격히 감소한다. 30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내적 인지 능력은 이후 조금씩 감소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신중한 태도가 이를 상쇄하면서 60대 무렵까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인지적 노화는 신체적 노화보다 조금 늦게 진행되지만, 한번 시작되면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70세에 도달하면 균형이 깨지면서 인지적 노화가 눈에 띄게 심해진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오래도록 인지 기능이 유지되지만, 심한 인지 저하를 보이는 알츠하이머 씨 치매의 위험성은 오히려 두 배에 달한다. 남녀 공히 한번에 여러 아이디어를 머리에 담아 처리하는 작업 기억과 고차원적 실행 기능이 떨어지고, 사고의 유연성이 감소하여 새로운 정보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재빠른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고 우물쭈물 망설이는 경향이 심해진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인지적 노화는 투자 수익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고령의 투자자는 젊은 투자자에 비해서 약 3~5% 정도 낮은 수익률을 보였다. 인지적 판단 및 투자 기술이 예전과 같지 않은데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낮은 교육 수준 혹은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졌다.

소위 인지적 비축량, 즉 젊은 시절에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쌓아둔 인지적 저장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과 지식, 원칙적인 투자 경향으로 인한 고령 투자자의 장점도 있지만, 나이에 의한 인지적 노화를 상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를 넘어섰다. 특히 70세가 넘으면 이러한 경향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비록 개인차가 크지만, 칠순이 지났다면 위험성이 높은 직접 투자는 신중을 기하는 편이 현명하다.  

# 노년기의 투자를 위해서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현상은 집단적인 투자 성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의 경우 투자 시장, 특히 직접 투자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상당수가 중년이다. 젊은 연령은 경험도 부족하고 투자할 만한 자산도 없다. 자산이 많은 연령에서는 독립적인 투자 결정이 줄어들고, 간접 투자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고령의 은퇴자가 많아지는 미래의 투자 시장은 점점 역동성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시장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이 무리한 투자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령화 사회는 이미 다가온 미래다. 은퇴 후에도 개인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려면 그에 맞는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 자신의 인지적 노화를 인정하고, 재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고위험의 직접 투자는 삼가는 것이 현명하다. 투자 전문가의 조언을 주의 깊게 수용하고, 오랜 경험과 지식으로 인지 능력의 감소를 벌충해야 한다. 큰 수익은 깨끗이 포기하고, 보수적인 자산 관리에 더 주력하는 투자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글: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