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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투라이프

[자투리경제] "1인 고령가구를 잡아라"…日편의점의 '시니어 격전(激戰)'

 

젊은 학생과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편의점. 이웃나라 일본의 편의점 풍경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이용객 3명 중 1명이 머리 희끗한 50대 이상, 이른바 시니어가 주 고객들입니다. 일본 최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이용하는 사람의 37%가 50대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2017년 기준) '인구가 고령화되니 고객의 연령도 높아지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인구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50대 이상 장년층의 편의점 애용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눈에 띨 정도로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9월 닛세이기초연구소가 세븐일레븐 이용자의 연령분포를 시계열로 분석한  리포트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는데요. 이에 따르면 지난 89년 한 해 세븐일레븐을 이용한 고객은 20대 이하가 60%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해 50대 이상 이용자는 10%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2017년에 오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됩니다. ​20대 이하 이용자가 20%로, 89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고, 대신 50대 이상은 전체 고객의 40%를 차지합니다. 50대 장년층의 편의점 이용 증가세는 인구 변화율을 감안하더라도 크게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1989년~2016년 기간 동안 총 인구 중 50대 비율은 30%에서 46%로 1.5배 증가한 데 비해 세븐일레븐의 50대 이상 고객 수는 4배나 증가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기간 동안 세븐일레븐의 영업실적이 이용자 수 뿐만 아니라 매출과 객단가가 동반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편의점 전체 매출액은 이미 2009년 백화점을 넘어섰고 가까운 장래에는 대형 마트 체인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편의점의 소비패턴을 연구해온 닛세이기초연구소의 구가나오코(久我尚子) 주임연구원은 “구매력 높은 1인 고령자 세대가 견인한 현상”이라고 분석합니다.

일본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수의 30%를 넘어섰고 이 중 60세 이상 가구가 전체의 4할을 점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는 2040년이 되면 전체 가구 수의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60대 이상 고령 가구가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일본 인구 추계는 내다보고 있습니다.

일본 시니어층의 ‘편의점 사랑’은 편의점의 판매구조가 고령자 1인 가구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고 닛세이기초연구소의 구가 연구원은 분석합니다. 편의점은 식료품이나 야채 등을 소량으로 포장해 판매하는데, 이 같은 판매 구조가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자 하는 독거 시니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편의점이 주택가에 위치해 있고 1층이라는 점, 점포 내 공간이 크지 않아 구매 시 이동거리가 짧다는 점 등도 고령자 1인가구가 편의점을 애용하는 이유로 분석됐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편의점이 '마을의 냉장고', '마을의 부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구가 연구원은 기존 편의점의 주 고객층인 젊은이들의 ‘편의점 이탈’도 편의점의 시니어 시프트를 가속화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고 강조합니다. 요즘 젊은 층은 장기불황을 겪은 세대이다보니, 소비 스타일이 가격에 민감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편의점보다 디스카운트 샵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 온라인 가격비교 등 디지털능력을 활용해 가성비 높은 인터넷 구매 위주로 소비를 합니다.

편의점이 '일상의 인프라'로 부상한 점도 시니어들의 편의점 애용의 이유로 꼽힙니다. 일본 편의점은 세금 등 공공요금 수납에서부터 주민증 발행 등 행정 관련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우편물과 택배를 보내고 받을 수 있고, 세탁물 위탁에서 버스, 항공권, 콘서트 티켓 구입까지 다양한 서비스로 고령 소비자들의 일상의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세븐일레븐의 지주회사 '세븐아이홀딩스'는 2017년 CSR리포트에서  ‘고령화,  인구감소 시대에 필요한 사회 인프라 제공’을 자사의 주요한 사회적 역할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고령화율이 30%를 향해 치닫는 등 초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요즘 일본의 편의점들은 지역 고령자들의 커뮤니티 거점으로서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내에 간병센터나 조제약국을 두는 가 하면, 외출이 어려운 소외지역 노인들을 위해 대신 장을 봐주기도 합니다. 지진 등 대형 재난 시 신속한 물자지원, 이재민에게 수돗물 화장실 주변정보를 지원하는 협정을 지자체와 맺기도 합니다.  

세븐일레븐의 ‘세이프티 스테이션(safety station)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업은 세븐일레븐과 함께하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한 사업으로,  ‘세이프티 스테이션 실시 점’이라는 푯말이 붙은 세븐일레븐 매장은 위험에 처한 여성이나 아이들을 긴급 보호하거나 배회하는 치매 고령자를 보호해 가족이나 경찰에 연락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점포내 ATM을 이용하는 고령자들의 행동을 관찰해, 고령자의 금융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세븐일레븐은 각 지자체와 ‘지킴이 및 모니터링 협정’을 맺는데, 2017년 11월말 현재 435개 점포가 세이프티 스테이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로손의 경우 고령자 간병 분야와 협업하는 사업이 눈에 띱니다.

‘케어(Care) 로손’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편의점에 간병 상담창구를 두고 고령자와 그 가족을 위한 간병 관련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간병 상담창구는 아침 8시30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운영되고 간병요양 관련 전문가가 상주합니다. 요양관련 상품도 취급합니다. 로손은 세대간 교류를 위해 편의점 내에 '살롱 스페이스'를 설치, 지역 시니어를 위한 행사를 개최하는 등 커뮤니티 거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패밀리마트는 일반 의약품은 물론이고 제조약도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일반 의약품+조제약국 일체형 점포를 확대중입니다. 고령자를 배려한 염분과 당질 제한 식품, 음식 섭취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를 위한 스마일케어식 등의 메디컬 푸즈(요양식) 취급 점포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현재 병원 내 편의점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약 70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 : 김웅철 매경비즈 대표,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