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취미-공연

[자투리경제] 바쁜 4050세대가 열광하는 트렌드, '편'리미엄

2020년, 올해의 트렌드 중 하나로 편리미엄이 꼽힌다. 편리 + 프리미엄. 편리함이 곧 프리미엄이라는 의미이며,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대가로 기꺼이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현상을 말한다. 편리미엄 트렌드를 보여주는 현상은 대단히 많다. 가사도우미 앱이 인기를 끌면서 집안 청소와 정리정돈을 외부에 맡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배송 서비스는 빨리 배달하는 경쟁에서 더욱 다양하고 특이한 물건을 배송하는 서비스로 확장된다. 또한, 필요한 물건,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대여를 해서 전문가에게 관리를 맡기는 구독 모델이 인기를 끌고 있다. 편리미엄의 대표적인 전자제품이라고 할 건조기, 식기 세척기, 로봇 청소기의 판매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편리미엄을 서술형으로 말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집안 청소는 대행업체에 맡기고, 요리는 외식 배달이나 프리미엄 간편식으로 대체하고, 자동차를 구입하는 대신 쏘카와 타다를 적극 활용한다. 문화생활의 편리미엄도 가능하다. 책을 직접 읽는 대신 오디오 북으로 듣거나 요약, 정리를 해 주는 유튜브를 이용한다. 중국에서는 30부작, 50부작에 이르는 장편 드라마의 내용을 10분에서 30분 정도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었더니 인기 폭발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영화 유튜브의 인기가 대단히 높은 것 역시 비슷한 지점이 있다. 과거 지상파의 <출발 비디오여행>이 영화를 보지 않고도 본 것처럼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영화 정보 프로그램이었던 것처럼.

편리미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전폭적으로 동의했다. 나 역시 돈보다는 시간을 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살던 집은 낡았지만 꽤 넓었다. 방이 4개였고, 거실도 컸다. 반면 나는 청소를 좋아하지 않고 정리정돈에도 소질이 없다. 주말이 되어 청소를 시작하면 2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대에 너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 명확했으니까.

하지만 청소는 달랐다. 어느 정도까지 해야 깨끗해지는 것일까. 창틀은 얼마마다 한 번씩 닦아야 하는 것일까. 목욕탕 청소의 주기는 얼마고, 어떤 정도로 해야 할까. 변기를 주에 한 번씩 닦으면, 목욕탕 전체도 그렇게 해야 할까?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청소는 어디까지일까.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이곳저곳 먼지를 털며 닦아내고 하면 한나절이 금방 지나갔다. 그러고 나면 지쳐서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청소에 세탁을 하는 것만으로 주말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어느 주말, 청소를 다 마치고 기진맥진해서 누워 있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나는 청소를 잘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해야 하는 것일까. 청소를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시간은 절반이면 충분할 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나는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을 충분히 취해서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가사 도우미를 알아봤다. 1주일에 한 번씩 가사 도우미에게 청소와 세탁을 맡겼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와 세탁을 직접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질이 확 올라갔다. 단순히 청소를 하니 힘들다는 것이 아니다. 청소를 함으로써 내가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과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사를 해서 작은 집으로 왔다. 이제는 직접 청소를 한다. 청소하는 시간은 이전 집의 1/3 정도다. 그 정도면 크게 힘들지 않고, 오히려 청소를 하는 것이 잠깐 머리를 식히는 여유가 되기도 한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편리미엄에 적극 동조하는 이유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는 흥미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다. 재료의 손질과 양념까지 다 끝난 상태의 요리를 끓이거나 굽는 정도가 좋다. 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에, 대부분의 과정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라고 느껴질 정도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고, 맛에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모든 이가 그럴 필요는 없다. 각자에게 맞는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편리미엄은 편리함이라는 요소가 부각되지만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을 다른 것에 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살기 위해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하기 위해서.

올해 설의 선물과 상품 구매 성향을 보니 2030세대는 ‘욜로’, 4050세대는 ‘편리미엄’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왔다고 한다. 당연하다. 2030세대에게는 아직 돈이 중요하다. 20대는 돈이 많지 않고, 30대는 돈을 벌기 시작하지만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40, 50세대는 한참 일하면서 어느 정도 돈의 여유가 생겼지만 반대로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인 것이다. 놀기 위해서도, 일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부족하다.

20, 30대도 편리함을 추구한다. 다만 시간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처럼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위해서 편리미엄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타다가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타다를 선호하는 주된 이유는 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모 품평, 정치적 폭언 등 폭력적인 말은 물론 일상적인 대화도 타다 기사는 하지 않게 되어 있다. 거칠고 폭력적인 언사를 쉽게 내뱉는 택시 기사에게 지친 여성들은 돈을 더 내더라도 편리함 때문에 기꺼이 타다를 선택한다. 단지 시간이 아니라 원하는 서비스 때문이다.

과거에는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제품의 질만 좋으면 된다,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된다 등등. 지금은 서비스의 종류보다 서비스의 질이 더욱 중요해졌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AS는 어떻게 되는지, 이후의 업그레이드나 후속 조치는 어떻게 되는지를 본다. 특히 일상적인 서비스의 경우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는지가 더욱 더 중요해졌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편리미엄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단지 시간만을 위해서 대중이 편리미엄을 택하지는 않는다. 서비스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준다고 해도 택하지 않는다. 퀄리티가 보장된 서비스가 편리미엄이다.

<글: 김봉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