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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취미-공연

[자투리경제 건강 정보] 영조대왕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고 장수한 비결은?

 

 

 

 

우리나라의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왕은 고구려의 ‘장수왕(長壽王, 394~491)’이다. 광개토태왕의 아들로서 이름 그대로 무려 97년을 살았다. 장수왕은 지금의 만주지방 대부분을 차지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졌던 임금으로서 최전성기를 구가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이었으니 요즘으로 보면 적어도 120세 정도에 해당된다고 할 정도로 장수했다.

 

그러니 장수의학적인 면에서 장수비결을 연구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타고날 적부터 건장했던 호걸이었다는 것 외에 자세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장수왕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임금은 조선의 영조대왕이다.

 

영조대왕은 지금으로부터 250~300년 전에 83세까지 장수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100세를 넘긴 정도로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이고, 60세를 넘긴 경우가 6명뿐이다.

 

사실 왕들은 장수하기가 쉽지 않은데, 막중한 국정의 중요 사항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신하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역모에 늘 노심초사할 뿐 아니라 왕비와 후궁 및 왕자들의 문제로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조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 평생 3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영조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마음의 큰 부담이 몇 가지나 있었다. 우선 왕위에 오르기 직전 자신의 이복형이었던 경종 임금을 독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렸고, 자신의 친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죄책감과 슬픔이 평생토록 지속되었다. 게다가 비천한 무수리 출신인 생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영조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3가지나 평생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신장의 정기를 강하게 타고나다

 

영조는 부모로부터 건강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생모였던 숙빈 최씨가 무척 건강했고, 부친이었던 숙종도 당시로서는 비교적 장수인 60세까지 살았으니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를 선천품부가 강하다고 하는데,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으로서 건강, 장수의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근본 기운이 바로 ‘신장(腎臟)의 정기’이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콩팥뿐만 아니라 비뇨생식기 전부와 성 호르몬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을 모두 합한 개념으로서 방광, 생식기, 뇌, 허리, 뼈, 치아, 귀, 머리카락 등까지 신장의 정기를 받아야만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신장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두뇌가 총명한 것도, 뼈대가 튼튼한 것도 실은 신장의 정기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신장의 기가 왕성하면 생장, 발육이 왕성하면 신체가 건장해지고 성기능도 좋지만, 신장 기운이 쇠퇴하면 기력이 쇠약해지고 정력이 감퇴하며 뇌졸중, 치매, 당뇨병, 골다공증 등의 성인병에 걸리게 된다. 또한 노화의 주된 원인이 신장의 정기 허약이므로 신장의 정기가 강해야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 신장이 강하다는 명백한 증거

 

영조의 신장이 강하다는 증거는 수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풍성한 수염을 자랑했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신장의 정기를 받는 곳이다. 역시 신장의 정기를 공급받는 두뇌가 매우 총명했기에 독서와 창작 활동을 통해 글씨나 시, 산문 등을 수천 권 넘게 남길 정도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고 특히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70세가 넘어서까지 성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나이에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요즘도 쉽지 않은데,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죠. 그것은 신장의 정기가 강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신장이 성호르몬과 성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신장의 양기와 음기가 정력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조는 엄청난 정력가로서, 강력한 신장의 정기를 소유했다고 볼 수 있고, 또한 그것이 건강장수하게 했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최고의 정력제로 알려져 있는 해구신(海狗腎)의 ‘신(腎)’이 바로 물개의 성기이다. 그래서 정력을 강화시키는 주된 방법은 신장을 보강하는 것으로서, 스태미나 식품이라고 알려진 것은 거의 대부분 신장에 작용하는 것이다.

 

 

                                                                                                                                                                                                    

둘째, 음식 양생법을 충실하게 실천하다

 

우선 소식하였고, 특히 기름진 음식을 적게 드셨다. 전통적으로 조선의 왕과 왕비들은 대부분 나라가 흉하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백성과 아픔을 같이 하였기에 반찬을 줄이거나 혹은 낡은 옷을 입는다든가 하는 것이 미덕으로 전승되어 왔다.

 

영조도 가뭄이 들면 하루 다섯 번 드시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이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였으며, 심지어 간장만으로 수라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고 소식한 것이 장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현미, 잡곡 같은 거친 음식을 즐겼다. 조선시대에는 쌀이 귀했는데, 왕이라면 당연히 쌀밥을 먹지만 영조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같은 잡곡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당뇨병, 고혈압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세종대왕은 영조와 달랐다. 세종은 비만인데다 대식가였으며 육식을 즐긴 반면 운동은 적게 하고 스트레스는 엄청 많이 받았다. 그 바람에 젊어서부터 당뇨병에 걸리고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54세로 승하했다.

 

셋째, 술을 상당히 절제하다

 

조선시대에는 술의 원료가 되는 쌀이 부족했기 때문에 ‘금주령’이 자주 내려졌는데,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강력히 시행했던 왕이 바로 영조였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만들어 팔거나 마시는 사람을 잡아오지 못하는 신하는 벼슬에서 쫓아내거나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집안 잔치에 술을 만들었던 종2품, 요즘의 차관급 신하를 잡아 목을 베어 성문에 내걸었다는 기록도 있다.

 

영조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시기는 했지만 금주령 때는 술 대신 생강차를 마셨고, 심지어 종묘에 술을 올릴 때도 감주로 대신했다고 한다. 술을 적게 마신 것도 건강을 지킨 비결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금주령 기간에 ‘송절차(松節茶)’를 즐겨 마셨는데, 실은 ‘송절주(松節酒)’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영조는 하반신 관절이 약했기에 송절주가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송절(松節)’은 소나무의 가지가 갈라지는 마디로서 사람의 가지에 해당되는 팔과 다리의 병증 치료에 쓰여 왔다. 팔다리가 저리고 아프며 시큰거리거나 관절을 굽히고 펴기 어려운 병증에 효과가 있는데, 뼈마디에 있는 풍기와 습기를 물리치고 근육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글: 정지천 동국대학교 일산한방병원장>

 

: 동국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1년부터 동국대 한의대 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 동국한방병원 병원장과 강남한방병원 병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명문가의 장수비결’, ‘조선시대 왕들은 어떻게 병을 고쳤을까’, ‘명의가 가르쳐주는 약이 되는 생명의 음식’ 등이 있다. KBS, MBC, SBS, EBS 등 다수의 방송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고 있다.

[자투리경제=윤영선 SNS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