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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취미-공연

[자투리경제 건강 정보] 에너지를 아끼는 '과묵'…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말이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음성기호’다. 생명체 중 가장 말이 발달한 생명체가 곧 사람이다. 말이 말을 낳는다고 말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이 참 많다. 오죽하면 ‘침묵이 금이다’란 말이 있을까. 나는 말을 잘 듣고 말을 해야 하는 직업으로 일생을 살았다.

 

정신적으로 불편한 분들을 만나다 보니 그들의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말을 종합하여 쉽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러니 잘 듣고 잘 말 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살았다.

 

“자네 우리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돌았나 안 돌았나 분석하고 있지”

 

동창들이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다 말고 화살이 나에게로 온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으면 으레 그런 반응을 한다. 나한테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떠들다 갑자기 나를 의식하면서 하는 볼멘 소리다.

 

어쩌다 나도 수다를 뜬다. 친구들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또 딴지를 건다.

 

"이 자식 정신과를 하더니 갔어요, 한 물 갔어”

 

나보고 돌았다는 말이다. 말이 많은 것을 보니 돌았단다. 친구 사이의 허물없는 농이지만 재미 있다. 내 쪽에서 보면 말을 해도 탈이고 안 해도 탈이다. 정신과가 전공이다 보니 마음을 헤아리는 선수쯤으로 생각한다. 자기들의 속마음을 들킨 듯 불편해 한다. 내가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고 한들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 때 조차 분석을 하고 있을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 선생님 원래 말씀이 적으세요?”

 

한번은 지방으로 강연을 간 적이 있다. 나를 안내하기 위해 마중 나온 주최측 인사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좀 일찍 도착하여 남은 시간을 그 분과 함께 지방의 여러 곳을 드라이브 했는데 드라이브 하는 내내 그분이 설명하고 나는 듣기만 했다. 그게 부담스러웠는지 그런 질문을 했다.

그냥 웃고 지나쳤다. 강연을 마치고 나를 역까지 바래다 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말씀을 그렇게 잘하시면서 아까는 왜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나를 마중 나왔을 때와 배웅할 때의 질문이 달랐다.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내가 말을 잘한다는 분도 있고 내가 과묵하다고 평하는 분들도 있다.

 

이 상반된 평가가 모두 옳다. 강의하기 전에 좀 과묵한 것은 강의할 때 집중하기 위해서다. 에너지를 좀 아끼는 편이다. 젊었을 때는 강의를 하기 전에도 과묵하지 않았다. 에너지를 아끼지 않더라도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점점 젊었을 때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내가 나를 관리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힌 것이 강의 전의 과묵함이다. 단지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마음 속으로 상대방의 질문이나 말에 대응한다. 나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리를 낸 적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은 나를 과묵하다고 본 것이다.

에너지를 아끼는 과묵 탓에 아직 강의는 집중하여 3시간 정도 연속해서 전달할 수가 있다. 요즈음 강의를 나갈 때 아내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차나 기차여행을 아내와 함께 하면서 어떤 장면을 보면 비슷한 연상을 하는 것이다. 참 놀랍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아내가 먼저 말을 한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아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나도 연상했었다.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 내용이 아내가 말하는 것과 똑같다. 참 신기하다. 오래 함께 살아서 그런지 느낌이나 표현 등이 대체로 비슷하다. 우리들이 지금 보다 더 나이 들어 아내 조차 에너지를 비축하고 과묵할 형편이 된다면 우리 부부는 둘이 서로 마주 보면서 마음 속으로 대화를 나누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심 전심이 통할 나이가 될지 모르겠다. 말을 안 해도 말을 알아 듣는 이심전심.

 

<글: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요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