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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정책정보

[자투리경제 전망대] 국내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

 

 

UN 가맹국 중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이 질문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에게 먼저 1에서 100 사이의 숫자가 적힌 행운의 바퀴를 돌리게 하고 나서 이 질문을 던졌다. 실험 대상자들 대부분은 아프리카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놀랍게도 행운의 바퀴를 돌려 나온 숫자와 근사한 값을 대답했다. 가령 바퀴가 60을 가리켰다면 실험 대상자들이 UN 가맹국 중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의 비율을 50∼70% 사이의 값으로 대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UN의 193개 가맹국 중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는 54개국이어서,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28%다. 그러나 닻을 내리고 나면 배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좁혀지는 것처럼 실험 대상자들이 어떤 숫자를 어림짐작으로 맞춰야 할 때 조금 전에 본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를 앵커링(anchoring) 효과라고 한다.

 

매월 첫 영업일에 지난달 통관기준 수출금액과 전년 대비 수출증가율이 발표된다. 투자자들이 국내경제와 관련해 가장 자주 접하는 숫자이다. 수출은 지난해 대비 10∼20%의 증가세이다. 7월 수출도 지난해 7월과 비교해 19.5%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우리 경제 전체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얼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자주 들었던 수출을 근거로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수출증가율이 앵커링 역할을 해서 GDP 성장률도 좋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은행이 올해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GDP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는 뉴스를 기억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우리나라는 수출이 좋아지면 GDP 성장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GDP 성장률은 수출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GDP 성장률의 특징을 보면 먼저 높은 수출증가율과는 달리 대외부문은 GDP 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 GDP에는 수출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수출에서 수입을 차감한 순수출이 포함된다. 2015년 이후 순수출은 줄곧 GDP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다.

 

수출이 높은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입 증가율이 더 높아 1년간 상품수지에서 흑자가 100억 달러 줄어들었다. 또 GDP에 포함되는 수출입은 상품뿐만 아니라 관광과 운송 등 서비스도 포함된다.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크게 줄어든 반면 내국인의 해외여행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1년간 서비스수지에서 발생한 적자가 250억 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해 적자가 100억 달러 늘었다.

 

100억 달러의 상품수지 흑자 감소와 또 다른 100억 달러의 서비스수지 적자 확대는 GDP 성장률을 2.4% 낮추는 역할을 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국내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전년과 비교해 올해 1분기 2.9%, 2분기 2.7% 성장에는 건설의 기여가 컸다. 2015년 이후 건설 투자의 성장기여도가 높았는데, 만약 건설이 없었다면 GDP 성장률은 1분기 1.4%, 2분기 1.2%에 불과했을 수 있다. 따라서 건설투자가 지나치게 위축되면 당장 3분기부터 GDP 성장률에 대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올해 1분기부터 설비투자가 증가하면서 순수출의 악영향을 모두 상쇄했다. 한국은행이 자신감을 갖고 올해 성장률을 상향 조정할 수 있었던 것도 예상보다 설비투자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비투자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전반의 생산은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2013∼15년에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IT산업을 중심으로 설비고도화 투자가 일어났지만, 다른 산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제조업 전반의 생산은 정체됐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중심으로 한 IT 설비투자의 증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주식시장은 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의 증가를 반기는 분위기다. 고도화된 설비로 고가의 제품을 만들고 높은 값에 팔아 기업이익이 증가했기 때문에, 관련 IT 기업들의 주가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실물경제의 거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경제의 둔화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글: 한화투자증권 김일구 연구원>

 

[자투리경제=윤영선 SNS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