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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투라이프

[자투리경제] 쇼핑중독, 병은 아니지만 병이다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명품을 휘감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백기를 든 여인이 있었다. 롤랑 무레 바지, 에르메스 스카프, 톰 포드 선글라스, 발렌티노 록스터드 힐 등 이름도 요란한 명품 하나하나에 친절하게도 검색용 해시태그(#)까지 붙였으니 몰매를 맞을 만도 했다.

 

‘명품중독증’에 걸린 이 여인은 누구인가?

 

영화배우 출신으로 열여덟 연상인 미 재무장관과 올해 6월 결혼한 서른넷 루이즈 린턴이다. 명품을 좋아하는 건 능력이니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공인인 그녀에게 공인다운 품격을 요구하는 건 대중의 권리다. 허영은 자신을 병적으로 사랑(自己愛, Narcissism)하는 여성을 공략하기 마련인데. 그녀 허영심이 얼마나 깊었으면 남편사랑으로도 잠재울 수 없었을까? 어느 작가의 말이다.

"여자를 보다 많이 타락시키는 것은 사랑보다 허영이다”
 

◆ 이야기 하나 ; 지름신에 홀려 그녀 노년이 침몰하다

 

앞뒤 생각 없이 쇼핑백에 주섬주섬 쓸어 담는 연인을 지켜보던 남자가 중얼거린다. “지름신이 강림(降臨)하셨군!” 지름신은 ‘지르다’의 명사형 ‘지름’과 신(神)을 합친 말이다. 신이 무당에게 내리는 신내림을 접신(接神) 또는 망아(忘我)라 하는데, 망아는 이성을 잃고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를 말한다.

 

지름신의 몽롱함을 즐기다 쇼핑중독에 빠진 여인이 있다. 평생 ‘시장표’였던 그녀가 막내를 장가보내며 백화점표 명품 핸드백을 예물로 받았다. 명품 백에다 딸이 마련해준 머플러를 두르고 집을 나서자 이웃여인이 인사말을 건넨다. “십년은 젊어 보이세요!” 무심히 던진 말에 취해 그때부터 명품가게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변신술에 능한 지름신이 핸드백 라벨 뒤에 숨어 그녀를 망아상태에 빠뜨릴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녀는 쇼핑 재미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더니 끝내는 노후보장으로 지켜온 집문서를 잡히고 대출을 받기에 이른 것.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 그대로였다. “필요 없는 것을 사면 머지않아 꼭 필요한 물건을 팔아야 한다.” 행정공무원으로 은퇴한 남편이 그녀를 말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누군가 남긴 금언이 귓전을 때린다.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은 오히려 상처를 준다.”


지름신의 포로가 된 후 그녀는 많은 것을 잃었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잃었다. 경쟁심에 눈이 멀어 다정했던 친구도 잃었다. 땀 흘리며 오르던 암자의 불심(佛心)도 잃었다. 소소한 기쁨에서 얻곤 했던 행복감을 모두 잃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팀의 실험결과다. 청춘세대는 사회적인 소속감이 불안할 때, 은퇴세대는 외로움이 밀려올 때 충동구매가 심했다고 한다. 청춘이든 노년이든 심리적으로 공허할 때 쇼핑에 나서지만 물질로는 공허감을 메울 수 없다. 영혼이 목말라하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지 물건이 아니라서 그렇다. 아일랜드 속담에 “가장 부유한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라 했는데 정신분석학자 로렌스 굴드도 같은 말을 했다.

 

“행복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기소유권 안에서 즐기는 사람에게 있다.”


 

◆ 이야기 둘 ; 누구에게나 자기인생의 통행금지선이 있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열면 먹고 마시고 입고 떠나라고 부추기는 광고들로 요란하다. 온라인쇼핑의 편리함에 빠지면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얻는 인간적인 즐거움만 놓치는 게 아니다.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고객명단에 이름이 오른다. 이런 사람을 오니오마니아(Oniomania)라 부른다. 오니오마니아는 판매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니오스(onios)’와 광기를 의미하는 ‘마니아(mania)’의 합성어다.

 

처음부터 오니오마니아인 사람은 없다. 심심파적으로 시작한 것에 발목이 잡혀 놀이의 즐거움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인생의 통행금지선을 넘어서게 된다. 그녀도 그랬다. 눈길에 미끄러져 발목에서 정강이까지 기브스를 하고 방안에 갇히자 유일한 말벗이 텔레비전이었다. 채널을 돌리다 만난 온라인쇼핑몰의 세계는 별천지였다.

  

기브스를 풀고 물리치료를 받으려면 원피스가 편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주문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녀의 쾌유를 빌며 친척들이 건넨 봉투와 친구들의 위로금을 오니오마니아가 되는 수업료로 탕진해버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자책으로 눈물이 쏟아졌다. 이때 쇼핑중독에 대한 신문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쇼핑중독은 필요하지도 않고 여력도 되지 않는 물건을 습관적으로 구매하는 행동으로 죄의식과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온다.”
 

바로 자기 이야기였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텔레비전 코드를 뽑았는데 화려한 쇼핑몰 장면들이 어른거려 괴로웠다. 금단현상에서 벗어나려 무거운 다리를 끌며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땀을 흠뻑 흘리자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온라인쇼핑몰에서 구입한 물건을 모두 꺼내 친척과 친구들에게 감사카드를 넣어 소포로 띄우자 무거운 빚을 갚은 듯 홀가분했다. 쇼핑중독의 길목에서 그녀를 돌아서게 한 행운의 만남은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한다. 브래드 블랜튼이 쓴 <정직의 즐거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은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깨닫는 것이다.”
 
◆ 이야기 마무리 ; 모든 욕망은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

 

기분이 우울해 집을 나섰는데 마땅히 갈 곳도 불러낼 친구도 없었다. 그냥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선 명품거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나! 아무리 비싸도 소품 하나쯤은 가져도 되잖아.’ 이런 생각으로 명품 모자를 하나 골랐다. “너무 잘 어울려요.” 점원의 말에 홀려 무료할 때마다 그 거리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녀처럼 기분전환으로 쇼핑중독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본인의 의지만 단호하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전문치료사도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중독자도 있다. 그녀는 필요한 것도 아닌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명품을 보는 순간 발동하는 도벽으로 형무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리고 있다. 훔치는 순간의 희열이 얼마나 크면 가족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을까? “나와도 곧 일을 저지를 테죠. 병이니까요. 팔순의 어머니가 받을 충격이 걱정이지요.” 감방을 드나든 지 이십여 년, 동생의 출소를 기뻐할 수 없는 언니의 착잡한 심정이다.

 

전문가들은 쇼핑중독을 감정문제로 본다. 특히 여성들은 신분상승을 꿈꾸며,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쇼핑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이 집착의 정체를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소유욕과 사랑을 혼동하지 말라. 사랑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 고통을 주는 건 소유에 대한 집착이며,그것은 사랑의 반대말이다.”
 
사랑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생텍쥐페리의 말을 수긍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고통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사랑의 고통은 집착 때문이다. 사랑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며 감동이며 환희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어찌 인류구원의 명제가 될 수 있었겠는가?

  
특검 차장검사라는 말에 속아 이십대 알바생에게 여자 열셋이 농락당한 이야기, 재벌친척 상속녀가 되었으니 소송비를 내면 받아주겠다는 재미교포 모녀의 말에 속아 여자 열다섯이 5년간 19억을 사기당한 사건……. 이런 사건은 하나같이 피해자가 가해자요, 가해자가 피해자다. 양쪽 모두 욕망의 춤에 놀아난 것이라서 그렇다. 쇼핑중독도 삶의 열정이 옆길로 빠져 욕망에 놀아난 것에 다름 아니다.

  
심리학자가 쇼핑중독에 붙인 이름표다. ‘병(病)은 아니지만 병이다.’ 이 말은 전염성 바이러스가 아니라 위험할 것까진 없지만, 방치하면 인생이 구급차에 실려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인생을 빛낼 자기만의 크리스털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이 영혼이다. 크리스털을 갈고 닦아 곱게 간직하는 것은 인생의 소명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묻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글:  이정옥 작가>

20여 년 동안 잡지 기자로 일했다. 은퇴 후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찾아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세 편의 시집과 두 편의 수필집을 냈으며 2009년 출간된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에서 ‘노년’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